기내식

평소와 같은 때라면, 나는 기내식을 일절 먹지 않는다. 기내식을 먹으면 먹는 속도나 식사의 종류에 따라 속이 더부룩해지거나 답답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배가 부른 상태는 정신이 또렷하지 않고 무거운 느낌을 만들어서 아예 먹지 않는다. 기내식을 아예 안 먹고 12~14시간을 비행하면 생체리듬이 리셋되어서 시차 적응이 빠르다는 얘기도 있다.

승무원들은 내가 먹지않겠다고 손을 저으면 늘 정말 아무것도 먹지 않겠느냐고 재차 확인하곤 한다. 나는 괜찮다고 한다. 물을 제외하면, 중간중간 나오는 크래커도, 오렌지주스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인천행 비행기에서는 왠지 기내식을 오랜만에 먹어보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기내식을 먹었던 것이 어렸을 때니까, 정말 오랜만이긴 하다.

그마저도 첫 끼는 자느라 먹지 않았다. 다행히(?) 두 번째 식사 때는 깨어 있어서 먹을 수 있었다.

달걀 요리와 닭고기와 밥 요리 중에 닭고기와 밥 요리를 선택했다. 빨간 한국식 고추장 양념에 과일과 요거트, 그리고 호밀빵과 버터가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기내식을 먹는 것은 평범한 일이지만, 나한테는 새로운 일이었다. 좁은 좌석 공간에서 조심스레 호일을 뜯어 접어 과일 그릇 밑에 두었다. 포크를 들어 닭고기를 한 입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며 블랙커피를 마셨다. 원래도 블랙커피 외에는 다른 커피 종류를 잘 마시지 않아 익숙한 맛이지만, 왠지 더 맛이 좋았다.

아마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내식을 먹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속이 더부룩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번에 기내식을 먹은 일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이따금,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고 익숙지 않은 환경에 있어 보는 것도 나를 더 객관적으로 보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