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이루는 조건 혹은 본질

명품을 이루는 조건, 혹은 본질은 무엇일까?

명품을 이루는 조건 혹은 본질
<명품의 조건>은 2018년 2월 퍼블리와 함께 발행한 디지털 리포트로 퍼블리가 뉴닉에 인수됨에 따라 콘텐츠를 제가 다시 가져와 craft + alchemy를 통해 다시 퍼블리시하게 되었습니다.

명품이 재미있는 이유

지난 2017년 3월 말, 조선일보에서 20대 이상 성인 여성 314명을 대상으로 명품에 대한 인식과 소비에 관한 조사를 했다[[1]].

[[1]]: 관련 기사: 명품은 럭셔리가 아닙니다 (조선일보, 2017.4.4).

그 결과 '명품'은 물질적 소비재라기보다는 '정신적 만족'이 더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정한 명품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인격, 품격, 개성, 가치, 나만을 위한 단 하나,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것, 지적 재산 등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우리는 '명품'을 생각할 때 옷이나 시계 등의 패션산업을 생각하기 쉽지만, 명품은 사실 좀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이다. 그래서 내게는 명품이라는 개념이 더욱 재미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명품이다.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야 명품을 알아볼 수 있다. 양산형 독일 자동차의 자존심인 BMW와 비즈니스용 워크스테이션으로 잘 알려진 씽크패드(ThinkPad)의 경우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명품으로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BMW나 씽크패드는 각자의 영역에서 경쟁자와 다른 길을 걸으며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명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단지 호화스러운, 겉이 화려한 물건만이 명품은 아니다.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고야드의 쇼퍼백은 명품이란 개념의 일부일 뿐, 그 전부를 대변하지 않는다.

명품의 참 의미는 브랜드와 함께 호흡하며 잘 다듬어진 제품의 만듦새와 그에 맞는 역사를 들춰보면 이해할 수 있다. 명품을 다루면 다룰수록 시장에서 성공하는 명품 브랜드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시장에서 실패하는 브랜드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가 제품을 판매한다고 명품 브랜드가 되는 것도 아니며, 호화스러운 허영심을 판매한다고 명품이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명품 브랜드란 무엇일까?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들

IBM에서 일할 당시, 시카고 오피스에서 리테일/소비재(Consumer Products) 산업군 파트너[[2]]가 내게 물었다.

[[2]]: 컨설팅 업계에서 파트너는 대개 상무 혹은 전무급 임원이다.

왜 IBM에서 전략 컨설팅을 하고 싶나요? 그중에서도 왜 리테일과 소비재인가요?

입사 당시 내가 속한 산업군은 다양한 산업을 다루는 '크로스섹터(cross-sector)'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매니저에게 리테일/소비재 산업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고 싶다고 얘기했고, 산업군 파트너가 직접 나에게 물어온 것이다. 리테일과 소비재 산업 팀으로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IBM에서 있으면서 리테일링의 미래는 기업들이 얼마만큼 빨리 디지털과 물리적 역량을 통합하고 강화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리테일/소비재 전략 컨설팅 팀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치를 고객사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큰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리테일과 소비재 산업 안에서도 가장 관심이 갔던 분야는 명품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변화를 주도해가고 있는 기업들이었다.

명품 산업에 속한 기업은 제품의 제작부터 유통, 그리고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방법까지 일반적인 소비재 기업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운영된다. 명품의 진가를 알아보는 전문가(connoisseur)와 같은 안목을 갖춘 고객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명품 브랜드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회사로서의 형태가 아닌, 고객과 함께 공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제품 이상의 감성을
전하는 것(deliver)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때로는 꿈과 허상을, 또 어떻게 보면 실용적인 것을 초월한 그 무언가의 가치를 파는 이 브랜드들의 면모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명품 산업의 조각들 하나하나를 연구하면 할수록 더 깊은 흥미를 갖게 되었다.

소비자는 왜 명품에 여전히 지갑을 여는 걸까

경영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가 발표한 <Global Powers of Luxury Goods 2017>에 따르면, 2015년에 세계 100대 럭셔리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자그마치 2,120억 달러(한화로 약 237조 원)였다. 이 기업들은 전년 대비 총합 6.8%의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 세계 11개국의 소비자 1,300명을 대상으로 "최근 5년간 명품(luxury products)을 구매하려는 의지가 증가했는가?"라는 설문에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그렇다(Increased)"라고 답했다. 소비자들은 도대체 무엇에 홀렸길래 불황이든 호황이든 지갑을 여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답은 여러 종류로, 또 여러 경로로 구해볼 수 있겠지만, 본 리포트가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색다른 관점과 통찰(unconventional insight)이다.

진정한 명품 브랜드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회사로서의 형태가 아닌, 고객과 함께 공존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Louis Vuitton Foundation) ©Gilles Paire

나는 그동안 진정한 감성을 전하는 물건을 찾아다녀왔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서 명품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명품을 찾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명품 기업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관점, 그들이 고객에게 제품 이상의 감성을 어떻게 전하는지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나만의 색다른 관점을 갖추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본 리포트에서는 나만의 관점과 내가 이해하는 명품 업계의 특성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저 밸류체인과 SWOT을 분석하고 데이터 및 파이낸셜 모델링을 통해 종합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숙련된 컨설턴트와는 다른 시선을 제공하려고 한다.

비록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주니어 컨설턴트이지만, 내가 직접 명품을 소유하고 사용하며 발견한 관점과 IBM이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배우는 넓고 다양한 업계의 면모를 종합한다면 그 관점 역시 신선할 것이라 기대한다.

사전에서 명품의 뜻을 찾아보면

'명품'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자. 어떤 것들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나, 브라이틀링의 내비타이머, 구찌나 생로랑의 하얀 스니커즈 같은, 주로 럭셔리 브랜드가 만드는 의류와 가방, 시계 등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왜 명품을 럭셔리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자사의 과거 보도 내용을 조사한 결과 '럭셔리(luxury)'가 '명품(名品)'이라는 단어로 불리게 된 것은 1980년대라고 한다.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브랜드들의 PR전략 차원에서 ‘명품’이라는 단어를 대신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
사전 상 명품과 럭셔리는 동의어가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명품'을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의 '럭셔리 굿즈(luxury goods)'는 사전적인 의미대로라면 '사치품', '호화품'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치품이라는 말이 주는 거부감을 줄이고 소비자들의 선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명품이라는 단어를 쓰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1991년 루이뷔통 한국 진출 당시 첫 홍보 매니저였던 손주연 한피알 이사는 "럭셔리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쉽게 알릴 수 있는 단어를 찾다가 일부 언론에서 해외 브랜드 제품에 '명품'을 붙이는 걸 보고 공식 보도자료에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이라 적었다"라고 했다.

그는 "루이뷔통 그룹(LVMH)이 각종 백화점에 매장을 내고 사세를 확장하면서 명품이란 단어로 인식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라고 덧붙였다.

참고기사: 최보윤·박은혜, 명품은 럭셔리가 아닙니다 (조선일보, 2017.4.4)

럭셔리 상품은 대개 '명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만, 명품이 곧 럭셔리 브랜드는 절대 아니다. 우리가 럭셔리와 혼용하고 있는 명품이라는 단어는, 사실 명품의 전체 개념 중 일부분만을 조명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명품의 조건은 무엇일까?

비트루비우스의 오래된 통찰

로마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3]]는 그의 저서 <건축술에 대하여(De Architectura)>에서 건축물은 세 가지 본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3]]: BC 1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건축가. <건축술에 대하여>는 로마 건축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일종의 건축학 논문이다. 인체의 비례와 대칭구조를 건축물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인체 소묘인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에 영향을 주었다.

비트루비우스가 말한 건축물의 세 가지 본질 (그래픽: 김영미)

견고함(firmitas), 실용성(utilitas), 그리고 아름다움(venustas)이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시각적인 요소뿐 아니라 기능주의적 측면에서 시작된다. 세 가지 본질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하나의 위대한 건축물이 탄생한다. 비트루비우스의 이러한 철학은 '효율의 완성이 시각적 완성을 이끈다'라는 세계관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견고함, 실용성, 아름다움
건축의 본질은
명품의 본질과도 통한다

2천 년 전 그가 이뤄낸 통찰은 건축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특히 명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의미하다. 명품은 반드시 사용 용도가 뚜렷하고 유용(실용적 가치) 해야 하며, 아름다운 형태(미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 그 사용성을 잃지 않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견고함(만듦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명품은 꼭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유형재(tangible goods)여야만 하는가? 나는 명품의 본질과 조건을 서비스 영역과 같은 무형재(intangible goods)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위 1%의 부호에게만 부여되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센츄리온(Centurion)[[4]]카드와 100년 가까이존속해온 전략 컨설팅 회사 맥킨지 & 컴퍼니(McKinsey & Company) 등도 명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예가 될것이다.

[[4]]: 연간 25만 달러 이상 지출한 소비자 중, 엄격한 심사를 거친 소수에게만 발급하는 하이엔드 카드. 일명 '블랙카드'로도 불린다. 사용한도는 무제한이며 영업시간이 아니더라도 명품 매장의 문을 열 수 있는 컨시어지 서비스가 제공된다. 포르쉐는 2011년 센츄리온 고객에게만 판매하는 모델을 출시한 바 있다.

명품을 정의하는 최소의 조건

책에 수록된 (명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들은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객관적인 판정 기준이란 어차피 없기 때문이다.

- 윤광준, <윤광준의 신 생활명품>

명품을 이루는 조건, 혹은 본질은 무엇일까? '이런 게 바로 명품입니다'를 기대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리포트는 명품의 조건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내가 이 리포트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명품'이라는 것은 단지 럭셔리 굿즈만 일컫는 단어가 아니라,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독자들이 명품에 관한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전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브랜드를 바라보기 원할 뿐이다.

따라서 나는 다수가 동의할 만한 가장 최소한의 조건을 전제에 두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명품을 만드는 브랜드와 명품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지표로 삼겠다.

1. 제품의 만듦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제품을 잘 만들어내는 것은 명품을 파는 브랜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기본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가장 어렵다.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몇 차례 바뀌어도, 심지어 도구로서의 실용성을 잃는다 해도 '잘 만들어낸다'라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다. 진정한 명품은 셀 수 없는 시행착오 끝에 재료와 기술, 제조 과정에 대해 타협 불가한 자신만의 기준을 확립한다.

품질은 가격이 잊힌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된다.
— 알도 구찌(구찌 창업자의 큰아들), 헨리 로이스(롤스로이스 창업자)

독일의 캐리어 브랜드 리모와(Rimowa)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근 셀레브리티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로 알려지며 대유행이 일어난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과시성으로 리모와를 구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모와는 실용성과 효율성을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승화한 기능주의의 산물이다. 독일 융커스 전투기의 DNA를 이어받아 아직까지도 고강력 금속인 두랄루민으로 만들어진다. 장인들이 손수 리벳(각 구조물을 연결하는 못)을 망치로 내려쳐 조립하는 방식도 고수하고 있다. 리모와의 완벽한 만듦새는 소비자가 새로운 여행의 역사를 써나 갈 수 있도록 돕는다.

리모와의 견고한 캐리어는 고객이 여행의 역사를 기록하는 그릇이 된다. (C) 손현

2. 브랜드가 전하는 철학과 가치

과거의 명품은 도구로서의 실용성과 견고함, 즉 만듦새만으로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명품을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가 소비자에게 얼마나 전달되는가'다.

창립부터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창업가의 철학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유산이자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가 된다.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파타고니아(Patagonia), 성공의 이정표로서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롤렉스(Rolex), 기록을 즐긴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를 오마주 하는 몰스킨(Moleskine)이 바로 그러한 브랜드다.

브랜드의 가치관, 이를 실현하기 위해 거친 과정과 높은 수준의 결과물, 그리고 이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가 공명할 때 비로소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성립한다.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음으로써 우리는 자연을 생각하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Patagonia

본질적 기능에 대한 '순수함'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시계의 순수함은 '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명품이라면 이 하나의 본질만큼은 제대로 구현하고 지켜가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장의 요구에 얼마큼 타협할 것인가'에 대한 브랜드 철학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성장하면
다양한 소비층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에 맞추다 보면
브랜드 철학과 자산이
희석되기 쉽다

잉크로 된 펜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다음, 얼마 안 가 지워지는 잉크와 지우개 달린 펜을 출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워지는 잉크를 만드는 것은 잉크의 순수한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시장 논리로는 한가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본질의 순수한 구현은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브랜드의 갖은 노력과 분투는, 그 자체로 스토리가 되어 명품을 소비하는 감성적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3.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소성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면, 명품이라 부를 수 없다. 수많은 브랜드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명품이라는 수식어를 남용하는 탓에, 진짜 명품들은 희소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일부 명품 브랜드는재고 분을 남몰래 소각하거나, 아웃렛 판매 비중과 규모를 줄이는 등 가격 결정권(price power)[[5]]을 갖기 위해 애쓴다.

[[5]]: 상품의 판매 가격을 좌우하거나 자유로이 판매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힘

가격 결정권은 제품의 희소가치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제품의 가격은 곧 시장에서의 가치를 의미하며, 브랜드 스스로 명품임을 선언하는 명백한 잣대가 된다. 롤렉스의 서브마리너(Submariner)도, 에르메스의 버킨백도 처음엔 그저 순수한 기능만을 수행하는 제품이었다. 어느 순간 이런 제품들은 가격이 곱절로 증가하며 시장에서 명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silver-colored Rolex analog watch reading at 1:55

지인과 대화 도중 재밌는 논제를 얻었다. 롤렉스 서브마리너의 출시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가격 상승률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거래 가격이 크게 증가하는 어느 지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데이터로 브랜드가 명품으로 거듭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6]]를 개연성 있게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이다.

[[6]]: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작은 요인으로 한 순간 마치 전염되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번지는 순간을 가리킨다.

브랜드가 스스로 명품이라 인식하는 순간

마지막으로, 제품이 내가 제시한 조건을 처음부터 모두 충족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 브랜드는 이 땅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명품이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는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인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세 가지 본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방향성을 두면 좋을 것 같다. 위에서도 수차례 말했듯, 브랜드가 스스로 명품이라 인식하는 순간은 시장과 소비자가 먼저 인식한 다음에 온다. 1906년에 창립된 몽블랑은 명품이 되었다. 1960년에 창립된, 300원짜리 수성펜(Plus Pen 3000)을 만드는 모나미가 100년이 지나서 몽블랑과 같은 명품으로 인식되는 순간이 올지는, 모나미의 철학과 방향성에 달렸다.


<명품의 조건>은 2018년 2월 퍼블리와 함께 발행한 디지털 리포트로 퍼블리가 뉴닉에 인수됨에 따라 콘텐츠를 제가 다시 가져와 craft + alchemy를 통해 다시 퍼블리시하게 되었습니다.

목차:

  1. 명품을 이루는 조건 혹은 본질
  2. 왜 프로들은 ThinkPad에 열광하는가?
  3. 독일 자동차의 자존심 BMW
  4. Gucci의 턴어라운드: 두 브랜드의 명암(1)
  5. Prada가 헤매는 이유: 두 브랜드의 명암(2)
  6. 공장으로 출발한 기업들, 스스로 명품이 되다.
  7. 영국의 헤리티지, Burberry
  8. 시계 산업이 실제로 파는 것
  9. 럭셔리 제국, LVMH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10. 명품 산업의 현재와 미래
  11.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